아버지께

글번호
847
작성자
류승훈
작성일
2021.02.04 23:03
조회수
697
난 요즘 나쁘지 않습니다.
지금 난 다른 사람들은 원해도 갈 수 없는 자리에 앉아서 내자리 지키면서 임무수행하고 있습니다.
익숙하지 않더라도 나름 인정도 받고 있구요
생활은 여유롭고 내가 원하는건 먹을 수 있고, 그리 값비싼 것들은 아니어도 갖고 싶은건 가질수 있지요.

보세요 아버지 정말로 저는 요즘 좋습니다.
그 어느때보다도 나의 삶은 여유 있습니다.

그런데도 당신이 없다는걸 깨달으면 너무나도 공허해집니다.
내가 이 자리에 오기 위해서 했던 노력들, 인정받기 위해 했던 모든 크고 작은 노력들은 당신과 내 어머니께 인정받고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함이었는데.
모든 것은 당신들에게 인정받기 위함이었는데, 이제 내가 어떤 일을 해내더라도 나는 절반의 인정만 받을 수 있습니다.
작은 것 하나하나 매일 이야기하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.
서로의 생각이 달라 다투던 그때의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.
이제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내 머릿속에서도 지워져서 점차 흐릿해져 갈겁니다.

“평생 잊지 않고 기억할게” 라는 흔하고 무책임한 말을 나는 내뱉을 수 없습니다. 나는 살아야하고 우리 집을 지켜야하며 사람은 간사해서 결국 또 살아지는 동물이라는거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으니까.
내 머릿속에서는 점차 당신을 지워나갈겁니다. 아무리 내가 거부하고 발버둥쳐도 그것은 일어날 일입니다.

그러니까 왜 그리 빨리 나를 떠났습니까?
왜 갈 때 말한마디 없이 갔습니까?
우리는 평생을 친구처럼 이야기하고 매일을 대화했는데, 어찌 마지막 말한마디 없이 나를 떠났습니까?
매일같이 통화하다가 딱하루 안했는데, 너무 피곤하다는 핑계로, 그저 하루였는데, 아버지 당신은 내가 그 하루를 얼마나 후회하기를 바라길래 내게 그리 잔인하게 떠났습니까?
전화 하나라도 아니 글귀 하나라도 남겨두는게 그리 어려웠습니까?
당신이 술한잔 같이하자 할 때 못이긴척 같이 한잔해드릴걸

보고 싶습니다.
어쩌다 한번씩 당신이 꿈에 나오는 날이면 나는 매일 어머니께 전화합니다.
그렇게라도 보는게 좋아서,
그럼에도 자주 오시지는 않네요 꿈은 내 생각이 반영되는 것일텐데, 이렇게 매순간을 떠올려도 그리 자주 보지는 못하니 얼마나 더 많이 떠올려야 꿈에서라도 매일 볼 수 있을까요.

내게 이런 슬픔을 안겨주고 이기적으로 떠난 당신이 미치도록 밉지만, 당신은 내게서 그 누구보다 안쓰러운 사람이고 미안한 사람이라 나는 당신을 미워하지 못합니다.
그래서 더 당신이 밉습니다.
당신은 미워도 미워하지 못하는 기분을 모를겁니다.

어쩌면 우리 가정사가, 아니 분명하게 그것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만들었겠지요.
그렇다고 당신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.
덕분에 나는 나 자신보다 우리가족을 더 중요시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까요.
다른 사람들은 나를 바보같다고, 그럴필요 없다고 답답해하고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.
심지어 우리 가족마저도 이해못할 수 있지요
근데 그런건 아무 의미 없습니다. 나는 이미 이런사람이고 내가 편한것보다 내 가족이 편한게 더 편하니까.
나는 가장이니까.

그냥 잘지낸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건데 쓰다보니 또 원망섞인 이야기가 됐습니다.
미안합니다.

또 쓰겠습니다.
안녕히.